Research Article
고대ㆍ중세 음성 망이산성의 역사적 배경과 운용
충북대학교
발행: 2021년 1월 · 29권 · pp. 1-33
본문 보기
초록
본고에서는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고대ㆍ중세 망이산성의 역사적 배경과 운용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였다. 망이산성은 고구려의 國原城 또는 皆次山郡, 신라의 國原小京ㆍ中原京또는 介山郡에서 관할하였고, 고려 초기 竹山또는 忠州에서 관할하였으며, 이후 조선 후기까지 충주에서 관할하였다. 망이산성은 백제에서 시축하였다. 대체로 4세기 이후 백제가 충북 지역으로 남진하며 운용하였는데, 4세기 후반 이후 고구려가 한강 유역으로 남진해 오며 군사적 중요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5세기 중반 고구려가 충주를 중심으로 한 남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6세기 중반까지 그의 세력범위에 속하였다. 그러다 6세기 중반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이후 秋風嶺路ㆍ鷄立嶺路ㆍ竹嶺路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상에서 운용되었다. 고려 시기 망이산성은 22역도 중에서 廣州道ㆍ平丘道와 관련되었다. 그 중에서 충북 지역의 주요 역은 계립령로ㆍ추풍령로와 통하였고, 죽령로와 연결되었다. 망이산성은 경기 남부에서 충북 지역의 주요 역을 잇는 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시기 망이산성에는 봉수가 운용되었는데, 봉수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북 음성-충주 및 청주 방면을 연결하는 봉수로상에 소재하면서 충북 각지의 봉수를 받아 경기도 안성으로 전달하였다. 망이산성은 삼국 항쟁기 군사적 요지였음은 물론이고 통일신라 이후 중세까지 교통로ㆍ봉수로상의 요지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