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옥천인의 해외독립운동과 선양사업의 과제
충북대학교
발행: 2020년 1월 · 28권 · pp. 65-102
본문 보기
초록
2020년 11월 현재, 옥천 출신의 독립유공자는 51명이다. 이들을 운동계열별로 보면 3·1운동 참여자가 26명으로 절반이 넘고, 국내항일 9명, 의병 6명, 중국방면 3명, 의열투쟁과 학생운동 각 2명, 임시정부·만주방면·미주방면 각 1명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 가운데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는 윤봉길 의거를 지원한 곽중규·곽중선 형제, 무장투쟁을 위해 둔전병 계획을 추진한 김규흥, 국내 의병에서 만주 독립군으로의 전환을 실증하는 김응선, 미주지역의 독립운동과 한인 언론을 주도한 김현구, 만주 독립군으로서 국내의열주쟁을 계획한 전좌한, 다양한 이념을 수용하여 불굴의 투쟁을 벌인 조동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옥천의 독립운동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설은 영성하다. 옥천의 상징적 공간에 지역의 독립운동을 종합한 ‘옥천독립운동기념탑’(가칭)과, 국권회복운동을 상징하는 활동으로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09년 문태수 의진의 이원역 폭파 의거를 기억하는 기념하는 기념물, 옥천의 3·1운동을 상징하는 이원과 청산의 만세운동 현장에 표지석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옥천의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전좌한과 김규흥의 행적에 시비가 제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좌한에 대해서는 이미 1980년 대부터 수차에 걸쳐 논란이 있었다. 김규흥에 대해서는 2016년 『宇都宮太郞日記』의 수록 내용 확인으로 행적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2019년 김규흥이 宇都宮太郞에게 보낸 편지가 새로 발굴되어 더욱 파장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김규흥 평가가 전면 부정당할 수도 있다. 차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실을 입증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만일 일제측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던 김규흥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는 윤봉길 의거를 지원한 곽중규·곽중선 형제, 무장투쟁을 위해 둔전병 계획을 추진한 김규흥, 국내 의병에서 만주 독립군으로의 전환을 실증하는 김응선, 미주지역의 독립운동과 한인 언론을 주도한 김현구, 만주 독립군으로서 국내의열주쟁을 계획한 전좌한, 다양한 이념을 수용하여 불굴의 투쟁을 벌인 조동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옥천의 독립운동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설은 영성하다. 옥천의 상징적 공간에 지역의 독립운동을 종합한 ‘옥천독립운동기념탑’(가칭)과, 국권회복운동을 상징하는 활동으로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09년 문태수 의진의 이원역 폭파 의거를 기억하는 기념하는 기념물, 옥천의 3·1운동을 상징하는 이원과 청산의 만세운동 현장에 표지석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옥천의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전좌한과 김규흥의 행적에 시비가 제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좌한에 대해서는 이미 1980년 대부터 수차에 걸쳐 논란이 있었다. 김규흥에 대해서는 2016년 『宇都宮太郞日記』의 수록 내용 확인으로 행적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2019년 김규흥이 宇都宮太郞에게 보낸 편지가 새로 발굴되어 더욱 파장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김규흥 평가가 전면 부정당할 수도 있다. 차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실을 입증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만일 일제측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던 김규흥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