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築城新圖』의 반포와 조선 전기 읍성의 내벽 구조 변화
원광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277-306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277
초록
조선 전기 읍성의 축성법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특히 1438년(세종 20)에 반포된 『축성신도(築成新圖)』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축성신도』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겸 성균주부(兼成均注簿) 이보흠의 상소문의 통해서 해당 축성법의 가장 큰 특징은 내벽을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읍성의 축성법은 현재까지의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종합하여 3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구분 짓는 기준은 『축성신도』이다. 현재까지 발굴조사 된 자료를 살펴보면, 계단식 내벽이 조성된 것 중 가장 이른 것은 1417년(태종 17)에 축조된 하동읍성이다. 이를 『축성신도』 축성법의 모본이 되는 읍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토성을 조선 초에 석성으로 개축한 읍성이 해당한다.
두 번째 시기는 『축성신도』의 규정에 맞추어 석재로만 내벽을 계단식으로 조성한 것과 이보흠의 상소에 따라 이를 보완하여 계단식 내벽에 흙을 덮는 방식의 읍성이 해당한다.
세 번째 시기는 1451년(문종 1)에 축성된 고현읍성부터 수직 형태의 내벽이 확인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다만, 두 번째 시기에 나타나는 계단식 형태의 내벽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종합하면, 조선 전기의 읍성은 기본적으로 외벽은 석축으로 견고하게 쌓고 내벽부는 석축(계단식 혹은 수직 형태)으로 쌓은 후 흙으로 경사지게 덮는 등 공통적인 축성방식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공통된 축성법이 확인되는 것은 『축성신도』의 반포와 성곽의 축조를 병조(정부)에서 관장하였고, 이를 감독·관리하는 관청을 통해 읍성 축조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 읍성의 축성법은 현재까지의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종합하여 3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구분 짓는 기준은 『축성신도』이다. 현재까지 발굴조사 된 자료를 살펴보면, 계단식 내벽이 조성된 것 중 가장 이른 것은 1417년(태종 17)에 축조된 하동읍성이다. 이를 『축성신도』 축성법의 모본이 되는 읍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토성을 조선 초에 석성으로 개축한 읍성이 해당한다.
두 번째 시기는 『축성신도』의 규정에 맞추어 석재로만 내벽을 계단식으로 조성한 것과 이보흠의 상소에 따라 이를 보완하여 계단식 내벽에 흙을 덮는 방식의 읍성이 해당한다.
세 번째 시기는 1451년(문종 1)에 축성된 고현읍성부터 수직 형태의 내벽이 확인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다만, 두 번째 시기에 나타나는 계단식 형태의 내벽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종합하면, 조선 전기의 읍성은 기본적으로 외벽은 석축으로 견고하게 쌓고 내벽부는 석축(계단식 혹은 수직 형태)으로 쌓은 후 흙으로 경사지게 덮는 등 공통적인 축성방식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공통된 축성법이 확인되는 것은 『축성신도』의 반포와 성곽의 축조를 병조(정부)에서 관장하였고, 이를 감독·관리하는 관청을 통해 읍성 축조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