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삼국통일 후 신라 6정·10정의 재편과 운용
전쟁기념사업회(전쟁기념관)
발행: 2024년 1월 · 33권 · pp. 2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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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신라 중고기 핵심 군사조직이며 삼국통일전쟁∼나당전쟁시 큰 역할을 담당했던 6정이 전쟁 이후 신라 군사조직 재편과정에서 해체되었는지, 아니면 존치되었는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삼국통일 이후에도 6정은 변화하거나 축소, 또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존속되었다.‘정’이름을 사용하는 군사조직을 보았을 때 6정은 10정의 상위부대로서 10정을 지휘하였다. 6정과 10정에 소속되어 있는 군관직을 살펴보면 보병군관만 소속되어 있는 6정과 기병군관이 포함되어 있는 10정이 서로 보완관계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6정 중 왕경의 대당을 제외한 5정은 군관구처럼 운영되었다. 5정 중 3정은 1개의 주를 관할하나, 상주정(귀당)은 2~3개의 주를 함께 관할하였다. 6정의 관할구역은 왕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와 연관되며, 1개의 정은 교통로상 경유지를 묶어 관할하였다. 6정의 각 구성부대는 같은 금색을 쓰는 10정 군사조직을 예하에 두고 지휘하였다. 왕경에서 출발하는 간선 교통로를 관리하기 쉬운 교통의 요지에 10정을 두고, 하나의 간선 교통로가 연결된 지역을 묶어 대당 외 지방 주둔 5정이 광역의 군관구의 모습으로 지휘하였다. 다만 완산정의 경우 금색이 백자인 데 반해, 삼량화정, 소삼정, 미다부리정은 금색이 흑색이기에 금색이 다르다. 이는 금마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신라는 반란 진압 후 이 지역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군사적 위험도가 낮고, 왕경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왕경의 군사들이 빠르게 투입될 수 있는 남방지역을 관할하는 하주정을 폐지, 완산정으로 개편했기 때문으로 완산정은 반란 감시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하에 10정 조직을 두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