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중등교과 동국사략』의 동학농민전쟁 이후 서술과 의병인식

심철기

한남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367-388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367

초록

본고는 대한제국기 중등 역사교과서인 『중등교과 동국사략(中等敎科 東國史略)』을 대상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당대사 서술의 전개 양상과 그 속에 투영된 의병 인식을 분석하였다. 현채(玄采)가 저술한 본서는 통감부 시기에 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역사 개설서로서 당대의 역사 인식과 교육적 지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자료이다. 본고는 특히 1908년 7월에 발행된 제3판을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부터 청일전쟁, 을미사변,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 사건, 그리고 1907년의 정미의병에 이르는 시기별 서술을 검토하였다.
『중등교과 동국사략』 초기에는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의 원인을 조선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규정하였으며, 일본의 개입을 조선의 개혁과 독립을 지원하는 문명개화적·자강론적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이는 박은식을 비롯한 자강운동 계열의 초기 인식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노골화됨에 따라 서술 기조는 비판적으로 선회하였으며, 일제의 강압적인 정책 수행과 주권 침탈 과정이 보다 상세하고 비판적으로 서술되었다.
의병에 대한 인식 또한 시기에 따라 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을미의병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는 반면, 을사늑약 이후 전직 관료와 해산 군인이 주도한 의병 운동에 대해서는 국권 회복을 위한 저항으로서 일정 부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다만, 1907년 의병전쟁 서술에서는 ‘의병’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회피하고 ‘병민(兵民)’, ‘해도(海徒)’, ‘폭도(暴徒)’ 등의 용어를 혼용하였다. 이는 무장투쟁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와 함께, 실력양성을 강조하는 자강론적 인식이 여전히 기저에 작용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키워드: 『중등교과 동국사략』현채의병문명개화론대한제국Jungdeung Gyogwa Dongguk Saryak(『중등교과 동국사략』)Hyeon Chae(현채)Righteous Army(의병)Theory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문명개화론)The Korean Empire(대한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