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북원경·중원경·서원경의 설치배경과 역사적 의의
연세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1-36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1
초록
삼국통일전쟁을 마무리한 신라는 옛 백제 사람, 옛 고구려 사람들이 온전한 신라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방제도를 개편하였다. 지방제도 개편의 담당자는 설총의 문자혁명과, 그에 동반된 교육혁명으로 양성된 중상층 실무관료층이었다.
지방제도 개편의 수단은 중국식 군현제였지만, 남북국기 신라가 채택한 군현제는 삼국기 신라의 역사적 경험이 반영된 영속관계형 군현제였다. 삼국기 신라는 각 지방의 대등과 서울의 대등의 관계가 수평적·다원적인 연맹국가였다. 남북국기 신라는 이에 더해 각 지방세력들에게 자체 반차(班次)를 인정해 주는 관반체제 국가였다. 그런 지방세력을 재지관반이라고 불렀다.
이런 지방제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남북국기 신라의 소경들이었다. 소경의 장관들은 대등들과 협력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촌주들과 함께 정책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이런 지방 운영은 전통 세력들과 충돌하여, 9세기 이후 변화함과 동시에 왕조 멸망을 초래하여 고려식 지방제도로 개편되고 말았다.
지방제도 개편의 수단은 중국식 군현제였지만, 남북국기 신라가 채택한 군현제는 삼국기 신라의 역사적 경험이 반영된 영속관계형 군현제였다. 삼국기 신라는 각 지방의 대등과 서울의 대등의 관계가 수평적·다원적인 연맹국가였다. 남북국기 신라는 이에 더해 각 지방세력들에게 자체 반차(班次)를 인정해 주는 관반체제 국가였다. 그런 지방세력을 재지관반이라고 불렀다.
이런 지방제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남북국기 신라의 소경들이었다. 소경의 장관들은 대등들과 협력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촌주들과 함께 정책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이런 지방 운영은 전통 세력들과 충돌하여, 9세기 이후 변화함과 동시에 왕조 멸망을 초래하여 고려식 지방제도로 개편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