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중원경(中原京)의 치소(治所) 범위와 구조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37-62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37
초록
오늘날 중원역사문화권의 용어는 신라시대 ‘中原京’에서 시작되었다. 충주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아우르는 중원경은 신라의 한강유적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제2의 행정수도로 역할을 하였다.
조사자료가 축적되면서 중원경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중원경의 행정 치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으며, 도시의 구조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고학적 접근으로 중원경의 치소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중심이었다. 최근 문헌으로 중원경의 범위를 설정한 연구는 상당히 의미 있다. 문헌으로 접근한 중원경의 범위와 그동안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종합했을 때 중원경의 범위는 오늘날 충주시와 경계를 거의 같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원경의 행정치소는 중앙탑면 탑평리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가 나당전쟁을 계기로 행정치소의 중심지가 오늘날 충주시내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충주사고지나 안림 택지개발지구 등의 새로운 고고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조사자료가 축적되면서 중원경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중원경의 행정 치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으며, 도시의 구조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고학적 접근으로 중원경의 치소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중심이었다. 최근 문헌으로 중원경의 범위를 설정한 연구는 상당히 의미 있다. 문헌으로 접근한 중원경의 범위와 그동안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종합했을 때 중원경의 범위는 오늘날 충주시와 경계를 거의 같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원경의 행정치소는 중앙탑면 탑평리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가 나당전쟁을 계기로 행정치소의 중심지가 오늘날 충주시내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충주사고지나 안림 택지개발지구 등의 새로운 고고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