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신라말·고려초 남한강을 통한 불교문화의 교류와 불상의 조성

서지민

충북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155-182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155

초록

이 연구에서는 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남한강 일대가 불교미술의 중요한 교류 공간이라는 사실을 불상을 통해서 논의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불상들은 크게 통일신라 전통양식을 계승한 유형과 고려 초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을 반영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대표적인 불상은 단양 용부원리사지 석조여래입상과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이다. 단양 용부원리 석조여래입상은 약 4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우전왕상식 대의를 입고 하체에 V자형 군이 표현되어 있으며, 머리 위 원형 구멍이 뚫린 보개가 있었다는 점에서 보관을 쓴 초기 석조여래입상으로 중요하다.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또한 전반적으로 통일신라 후기 양식을 갖고 있지만, 4-5등신으로 신체 비례가 작고 형식화가 진전되어 있어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불상은 7세기 후반 경주 남산 왕정골 석조여래입상과 8-9세기 경주 장항리 석조여래입상, 삿갓골 석조여래입상 등 왕경지역 석조여래입상의 전통을 잇고 있다.
반면 고려 초기 남한강 유역에 조성된 새로운 도상의 불상들은 왕경의 불상양식이 지역으로 전래되어 토착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주 영파리 석조보살입상 유형은 보관 없이 보발을 높이 틀어 올린 형태와 우전왕상식의 대의를 착용하는 점이 특징이며, 미륵보살상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유형에 속하는 예는 서울 진관동, 상부암, 원주 신선암, 매지리 석조보살입상인데 해주와 서울, 원주 등 고려 수도 개경 인근 지역과 남한강 수운 영역에 분포한다. 이 석조보살입상 중에서 이른 시기에 예인 해주 영파리 석조보살입상이나 서울 진관동 석조보살입상은 장신구 등의 세부 표현도 정교하며 신체 비례가 늘씬한데 비해, 좀 더 늦게 제작된 매지리 석조보살입상을 비롯한 원주지역에 조성된 같은 형식의 불상들은 점차 얼굴에 살이 오르고 불신이 둔중해지는 등의 변화를 보인다. 이는 같은 계통 불상들에 비해 지역색을 강하게 띠면서 점차 토착화된 결과로 이해된다. 개경 현화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비교되는 여주 도곡리 석조여래좌상도 남한강 수상 교통로를 통한 개경의 불교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해졌던 미륵불상 도상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남한강 유역 불상들은 통일신라와 고려 불상 양식의 계승·변용·융합 양상을 하나의 문화권 내에서 보여준다. 이들 불상 연구를 통해 당시 불교미술 전파와 변형 과정, 지역 간 양식 교류와 토착화 현상을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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