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중원지역 고구려 유물의 특징과 의미
충북대학교
발행: 2022년 1월 · 30권 · pp. 103-142
본문 보기
초록
본 논문은 중원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의 현황과 특징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지금까지 중원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그 수량과 종류가 많지 않아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고구려 도성이 소재한 중국 지안(集安)이나 북한의 평양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유물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중원지역에 고구려가 진출하였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서는 토기를 통해 충주 지역은 5세기 중후반, 청원지역은 475년 이후에 고구려가 진출하였음을 상정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금동 광배와 금제 귀걸이를 위시한 장신구류를 근거로 고구려가 중원지역을 한동안 안정적으로 지배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고구려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골산성이 지역 거점성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물론 해당 내용은 남성골산성 출토 유물 뿐만아니라 유적의 규모와 유구의 내용 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밖에도 논문에서는 고구려 토기 제작에 舊백제 공인이 참여하였을 가능성도 언급하였다.
중원지역은 일찍부터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로 그 주체가 바뀌면서 기저에 남아있던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삼국 통일 이후에는 남한 전역에는 신라 문화가 퍼져나가게 되었지만, 토기, 기와, 성곽, 무덤, 사찰 등에서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문화의 융합 양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인된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서는 토기를 통해 충주 지역은 5세기 중후반, 청원지역은 475년 이후에 고구려가 진출하였음을 상정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금동 광배와 금제 귀걸이를 위시한 장신구류를 근거로 고구려가 중원지역을 한동안 안정적으로 지배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고구려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골산성이 지역 거점성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물론 해당 내용은 남성골산성 출토 유물 뿐만아니라 유적의 규모와 유구의 내용 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밖에도 논문에서는 고구려 토기 제작에 舊백제 공인이 참여하였을 가능성도 언급하였다.
중원지역은 일찍부터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로 그 주체가 바뀌면서 기저에 남아있던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삼국 통일 이후에는 남한 전역에는 신라 문화가 퍼져나가게 되었지만, 토기, 기와, 성곽, 무덤, 사찰 등에서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문화의 융합 양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인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