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4세기 백제의 영역국가 전환과 왕권 중심 정치체제의 성립
동국대학교
발행: 2022년 1월 · 30권 · pp. 14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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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그간 백제 고고학 연구의 진전에 수반하여 4세기 중후반 백제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하였다. 근초고왕대에 영산강 유역을 점령하였다는 기존 문헌사학계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의심받게 된 것이 대표적 예이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백제가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된 시점에 대해서도 재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연구 분위기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바는 있지만, 기존에 쌓아온 연구 성과들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백제는 근초고왕대 무렵에 방위명 5부를 설치하였다. 방위명 5부는 전국을 대상으로 설정되었으며, 그 범위는 북으로는 예성강, 동으로는 춘천, 남으로는 차령 이북 지역에 미쳤다. 방위명 5부 설치 과정에서 많은 축성과 사민이 이루어졌고, 이는 백제 중앙의 지배력이 5부 전체에 깊고 고르게 침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백제의 지배력이 5부에 고루 미치고 있었음은 병력 동원체계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백제는 근초고왕대에 들어와 최대 3만 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는데, 3만이라는 수는 당시 백제에 편입되어 있던 거의 모든 가호로부터 1명씩 차출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또한 백제는 철기 생산과 보급을 독점하여 읍락에 대한 기존 국읍의 영향력을 분쇄하는 방식으로 소국 질서를 해체해 나갔다. 이는 소백산맥 일대의 철산지를 직접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제는 이렇게 읍락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개별 읍락을 지방 행정의 단위로 편제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철기 보급의 확대는 자연히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유발하였고, 생산력의 증대는 계층분화를 유발하여 읍락 내의 공동체적 사회관계가 해체되어 갔다.
영역국가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정국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초래하여 왕권 중심 정치체제의 성립을 가져왔다. 좌평은 연맹왕국 시기에 재지세력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유지한 채 수여받은 칭호였기 때문에, 지방에 대한 영역화 작업이 진행될수록 좌평을 수여받는 계층은 축소되어 갔다. 그 결과 근초고왕·근구수왕대가 되면 오직 진씨만 좌평을 수여받게 되는데, 이 시기 진씨는 내치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는 등 왕권에 필적하는 위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위세를 누리던 진씨도 진사왕대에 이르면 일원적 관등제하에 편입되는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진사왕이 동진으로부터 백제왕에 책봉되며 백제 왕권의 권위가 한층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백제는 근초고왕대 무렵에 방위명 5부를 설치하였다. 방위명 5부는 전국을 대상으로 설정되었으며, 그 범위는 북으로는 예성강, 동으로는 춘천, 남으로는 차령 이북 지역에 미쳤다. 방위명 5부 설치 과정에서 많은 축성과 사민이 이루어졌고, 이는 백제 중앙의 지배력이 5부 전체에 깊고 고르게 침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백제의 지배력이 5부에 고루 미치고 있었음은 병력 동원체계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백제는 근초고왕대에 들어와 최대 3만 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는데, 3만이라는 수는 당시 백제에 편입되어 있던 거의 모든 가호로부터 1명씩 차출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또한 백제는 철기 생산과 보급을 독점하여 읍락에 대한 기존 국읍의 영향력을 분쇄하는 방식으로 소국 질서를 해체해 나갔다. 이는 소백산맥 일대의 철산지를 직접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제는 이렇게 읍락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개별 읍락을 지방 행정의 단위로 편제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철기 보급의 확대는 자연히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유발하였고, 생산력의 증대는 계층분화를 유발하여 읍락 내의 공동체적 사회관계가 해체되어 갔다.
영역국가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정국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초래하여 왕권 중심 정치체제의 성립을 가져왔다. 좌평은 연맹왕국 시기에 재지세력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유지한 채 수여받은 칭호였기 때문에, 지방에 대한 영역화 작업이 진행될수록 좌평을 수여받는 계층은 축소되어 갔다. 그 결과 근초고왕·근구수왕대가 되면 오직 진씨만 좌평을 수여받게 되는데, 이 시기 진씨는 내치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는 등 왕권에 필적하는 위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위세를 누리던 진씨도 진사왕대에 이르면 일원적 관등제하에 편입되는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진사왕이 동진으로부터 백제왕에 책봉되며 백제 왕권의 권위가 한층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