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신라 한주 관방시설 정비의 군사사적 의미
한성대학교
발행: 2024년 1월 · 33권 · pp. 17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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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6세기 중반 신라의 북진기에는 신복속지에 대한 지배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라는 신주의 치소와 대중국 해상 교역로의 출발점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중심으로 관방시설을 구축하였다. 이 시기에 하남 이성산성, 화성 당성, 안성 죽주산성, 용인 할미산성이 축조되었다.
6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면서 한강 이북 지역의 상황은 불안해졌다. 신라는 7세기 초에 북한산성 전투를 통해서 한강 이북지역부터 회복하려는 고구려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라는 신주의 대민지배를 확립하고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한 관방시설을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축조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중랑천 수계를 따라 양주 분지,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지점에 관방시설을 구축하였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안양천 수계와 당성을 보호하기 위해 서해안 지역과 한강 하구의 주요 요충지에 축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안성천 유역까지 관방시설을 구축하며 신주의 치소를 방어하는 관방체계를 확립하였다.
신라는 낭비성 전투 이후에 방어선을 임진강-한탄강 남안까지 북상시키며 고구려와 대치하였고, 이러한 관방체계는 고구려가 멸망하는 시점까지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당전쟁기에 당군의 남진을 저지하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군사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6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면서 한강 이북 지역의 상황은 불안해졌다. 신라는 7세기 초에 북한산성 전투를 통해서 한강 이북지역부터 회복하려는 고구려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라는 신주의 대민지배를 확립하고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한 관방시설을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축조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중랑천 수계를 따라 양주 분지,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지점에 관방시설을 구축하였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안양천 수계와 당성을 보호하기 위해 서해안 지역과 한강 하구의 주요 요충지에 축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안성천 유역까지 관방시설을 구축하며 신주의 치소를 방어하는 관방체계를 확립하였다.
신라는 낭비성 전투 이후에 방어선을 임진강-한탄강 남안까지 북상시키며 고구려와 대치하였고, 이러한 관방체계는 고구려가 멸망하는 시점까지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당전쟁기에 당군의 남진을 저지하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군사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