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본문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저장양상 복원 시론: 단양 수양개 유적을 중심으로

A Preliminary Study on the Reconstruction of Storage Patterns in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of the Central Region: Focusing on the Suyanggae Site in Danyang

김범철1 · 이준2 · 김수연2
Beomcheol Kim1, Jun Lee2, Suyeon Kim2

1 충북대학교

2 충북대학교 박물관

1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2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Museum

발행: 2025년 1월·Vol. 35, No. ·pp. 233-250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233

초록

고고 유적에서 수습된 토기는 당시 주민들의 경제적 활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 저장에 활용되었을 토기에 대한 분석은 자원의 계절적 변이를 완충하거나 사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해당 사회의 조치를 추정하는 기초가 된다. 본고는 7개 취락 출토 토기의 용량을 복원하고 자연환경 요소―토양, 기온, 강수량 등―의 분포와 비교하면서,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집단들이 보이는 저장행위의 변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저장용 토기의 비율ㆍ수량이 압도적인 단양 수양개(垂楊介) 유적의 양상에 대한 이해에 좀 더 주목하기로 한다. 수양개는 해당 문화권의 동남단에 위치하며, 내륙 산악지형이 초래하는 환경적 압박을 반영하는 유적이기도 하다. 비록 한반도 중부지역 원삼국시대라는 한정된 시ㆍ공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저장의 압박이 적잖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고려하면, 계량화를 통해 관련 행위 복원에 접근하려는 본고의 시도는 이론적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Abstract

Pottery recovered from archaeological sites serves as an important channel for understanding the economic activities of past inhabitants. Analysis of pottery used for storage provides a basis for estimating social measures taken to buffer seasonal variations in resources or to achieve socio-political goals.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variations in storage behavior among groups in the central region during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by reconstructing the capacity of pottery excavated from seven settlements and comparing it with the distribution of natural environmental factors such as soil, temperature, and precipitation. In particular, more attention is paid to the patterns of the Suyanggae site in Danyang, where the proportion and quantity of storage pottery are overwhelming. Suyanggae is located at the southeastern edge of the cultural area and reflects the environmental pressures caused by inland mountainous terrain. Although this study focuses on a limited time and space, considering that storage pressure is a fairly universal phenomenon, it is expected that this attempt to approach the reconstruction of related behaviors through quantification will allow for theoretical expansion.

주제어:중부지역원삼국시대토기 용량 복원저장단양 수양개 유적
Keywords:Central RegionProto-Three Kingdoms PeriodPottery Capacity ReconstructionStorageSuyanggae Site in Danyang

Ⅰ. 머리말

고고학에서 토기는 해당 문화의 시·공간성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경로가 되어왔다. 그렇다면,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토기 또한 저장, 취사, 의례 등 당시 사회의 여러 활동을 재구성할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들은 양식 및 기술적 특징, 편년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던바, 활동 또는 행위의 맥락에 대한 이해에는 다소 부족함이 없지 않다. 본고는 그러한 현재의 한계를 돌파하는 한 방편으로 토기의 용량 복원을 시도한다. 용량은 단순히 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저장양상과 사용 맥락을 이해하는 핵심적 지표이다.

저장양상에 관한 본고의 관심은 수양개(垂楊介) 유적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수와 높은 비율의 대형(大形)용기가 확인된 데에서 시작되었다. “중부지역 원삼국문화의 가장 끝자락에 자리한 이곳에서 왜 이렇듯, ‘저장’의 행위가 강조되고 있는가?”가 의문의 시발이라 하겠다.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고는 용도를 전제했으되, 실제 복원에는 한계를 보이는 기존 기종 분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용량에 초점을 맞춰 당시의 저장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복원된 저장역량의 유적 간 비교는 물론 그 차이를 발생시키는 데에 작동했을 몇 가지 자연적 요소들과의 관계도 시험적으로 탐색해보고자 한다.

Ⅱ. 토기 기종 구성과 용량 복원 이해의 기초

1. 토기 기종 분류와 용량

고고학 연구에서 토기는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된다. 형상, 표면처리, 소성 방식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壺), 옹(甕), 완(盌), 천·심발(淺·深鉢), 두형(豆形)토기 등 기종(器種) 구분은 형상에 따른 분류의 일종으로 대상 시기를 불문하고 우리 고고학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기종 구분 자체는 이른바 ‘토속적 분류(folk classification)’에 가까운 것으로, 계측속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과학적 분류(scientific classification)’와는 대비를 이룬다(Rice, 1987). 명칭이 그러하여 꼭 전자가 열등한 듯 느껴지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분류에서 양자는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관행상 ‘기형(器形)’에 주목하여 기능 또는 용도가 다를 만한 여러 크기의 토기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우리 청동기시대의 ‘송국리식(松菊里式) 토기’, 원삼국시대의 ‘중도식(中島式) 토기’처럼 고고학적 맥락에서 부여된 명칭의 토기를 대, 중, 소 등으로 구분하고 그 사용에 관련된 해석을 시도하는 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겠다.1)

이즈음에서 ‘기종’과 ‘기형’은 어느 정도 엄정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일이 각각의 어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두 개념 사이의 차이는 ‘용량’이라는 요소에서 찾아질 수 있다(Senior and Birnie III, 1995). 기형은 같더라도, 용량이 현저하게 차이 나는 두 토기는 다른 용도를 갖는, 다른 기종이 된다. 전통찻집에서 물잔 모양이 옹기 항아리인 경우가 그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토속적 분류상 옹과 호라는 다른 기종으로 구분되지만, 용량이 유사하면 용도가 유사했을 가능성도 크다. 물론, 별도의 토기로 제작한 데에는 분명 다른 요인, 예를 들어 상징적이나 사회정치적 차이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듯, 고고학자가 채택하는 기종 분류체계는 그 이면에 복잡다단한 생각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2. 토기 용량 측정: 방법적 논의

토기의 용량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다. 우리 고고학에서는 선사시대 토기를 대상으로 그런 시도가 시작되었다. 완형(完形) 토기에 곡류를 채우거나 실측도를 이용하되 원추를 부과하여 그 값을 재는 등의 방법이 시도(구자진, 2003 ; 조현종, 1989)되기도 했지만, CAD 등 편리한 그래픽 프로그램의 이용이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주로 전자화된 도면을 활용한다(김범철, 2013, 2014, 2016 ; 김범철 외, 2007 ; 김영준, 2003 ; 손준호ㆍ庄田 愼矢, 2004).

Ⅲ.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토기 기종 분류의 제문제

본고의 일차적 목표인 (주거 및 유적별) 저장용량 복원을 위해서는 이른바 ‘저장 용기’를 구분해 내야 한다. 다만,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복잡다단한 관계가 있는바, 본격적인 용량 복원 및 저장 용기 추출에 앞서 기종 구성에 관한 약간의 선제적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이미 통용되고 있는 안에 따르면,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토기는 우선, 태토 및 표면처리에 따라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구분된다. 경질무문토기 기종으로는 호, 옹, 발, 완, 시루, 뚜껑이 있다. 타날문토기는 다시 산화염 소성과 환원염 소성으로 구분되는데, 산화염 소성의 기종에는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시루, 동이, 주구토기 등이, 환원염 소성의 기종에는 원저단경호, 대옹, 이중구연호 등이 포함된다(한국고고학회, 2010). 여기에 별도로 평저호, 단경호, 분(盆)형토기 등 낙랑(계) 토기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고의 분석 대상에서는 더욱 그러하여 [표 1]

표 1 유적별 완형 토기 출토 현황

연번 권역 유적 주거 토기/주거 합계 경질무문 타날문 낙랑(계)
내만구연옹 시루 뚜껑 산화염 환원염 평저호 단경호 분형토기
심발 장란형토기 시루 동이 주구토기 원저단경호 대옹 이중구연호
1한강 중·하류발안리591.5871725012758103006201000
2한강 중·하류곤지암921.31236381830714490027200220
3북한강중도동1492.13191619371171492250019100150
4북한강율문리1501.319428503229131150000091001240
5북한강둔내76.042141201034112002000020
6남한강천동리114.24632105102000005000000
7남한강수양개215.411420531104172030012100000
합계/평균4891.9925133372417635119220722008070115130
소계(경질) 760(타날) 137(낙랑) 28
이후에는 고려하지 않는다.

[표 1]은 이상의 분류체계에 따라, 발안리(發安里, 화성), 곤지암(昆池岩, 광주), 중도동(中島洞, 춘천), 율문리(栗文里, 춘천), 둔내(屯內, 횡성), 천동리(泉洞里, 평창) 및 수양개(垂楊介, 단양) 등 7개 주거유적에서 확보된 925개체의 완형 토기를 배정한 결과이다. 유적에 따라, 주거와 수습된 완형 토기의 수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유구가 많이 조사된 유적, 곧 규모가 큰 취락에서는 비례적으로 많은 수의 완형 토기가 잔존할 확률이 높다는 상식적인 결과의 산물인 듯하다. 그런데 ‘남한강’ 권역 내 유적들에서 완형 토기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다는 점이 다소 이채롭다[표 1]. 이런 현상이 우연의 산물인지, 특수한 원인이 작동한 결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이 내륙의 산간지대에 속해 있다는 점 정도가 나름 공통된다고 하겠다 [그림 1]

분석 대상 유적
그림 1 분석 대상 유적
.

그런데 기존의 안에는 다소 혼란을 초래할 부분들이 있고 용량에 기반한 용도의 구분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고서마다 이른바, (협의의) 중도식 토기가 호로도, 옹으로도 분류되어 있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용량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앞서 살핀 토속적 분류를 따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부가 발로 구분되는 점을 보면, ‘크기’라는 요소가 작동한 듯도 하여, 대체로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하겠다. 차라리 하나의 범주로 묶은 뒤, 용량에 따라 구분하는 작업이 오히려 과학적 분류를 함께 적용하기에 좋을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환원염 소성의 타날문 ‘대옹’은 특수한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어 실전에서의 효용성은 있겠으나 특별히 ‘대(大)’를 붙여 옹의 몇 가지 아(亞)형식 중 하나인 듯한 인상을 주는 점, 비슷한 모양의 장동화된 호와 기형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점 등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고 용량 복원 시 기종의 추적이 쉽도록 다음에서는 기존의 기종 분류체계를 일부 수정하기로 한다. [표 2]

표 2 수정된 기종 분류체계와 용량 분포

태토/표면기종개체용량 분포
경질무문중도식 토기4810.10 ~ 87.58 ℓ
140.85 ~ 66.27 ℓ
내만/직립구연옹681.00 ~ 41.30 ℓ
540.01 ~ 8.70 ℓ
350.04 ~ 6.31 ℓ
기타80.21 ~ 0.70 ℓ
타날문심발191.20 ~ 25.29 ℓ
장란형토기67.63 ~ 38.61 ℓ
원저단경호800.93 ~ 53.31 ℓ
대옹621.40 ~ 146.17 ℓ
771
는 수정안을 따라, 분류된 토기들의 수 및 용량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낙랑(계) 토기는 물론, 본고의 대상 유적에서는 나타나지 않거나 저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루, 뚜껑(이상 경질무문) 및 동이, 주구토기, 이중구연호(이상 타날문)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771개의 개체만이 분석 대상이 된다.

이런 나름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표 2]에서 보는 대로, 한 기종 범주에 현저한 용량 차이를 보이는 토기들이 공존하게 된다. 본고의 한계를 넘어서지만 과학적 분석(김범철, 2013)을 시도한다면, 좀 더 체계적인 기종 분류체계의 수립이 가능할 수는 있겠다. 어쨌든, 현재로선 기종에다 용량에 기반한 용도를 결부시키는 작업(김범철, 2016)은 무의미할 듯하다. 그러므로 다음에서는 기종에 연연하지 않고, 저장에 활용되었을 만한 토기의 추출에 집중하기로 한다.

Ⅳ. 중부지역 원삼국시대 저장행위의 복원

저장행위에 대해 추론하기 위해서는 저장용량의 복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저장용량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저장에 사용되었을 토기를 추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에서는 앞서 언급한 7개 유적에서 출토된 완형 토기를 대상으로 용량분석을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장용 토기를 추출하여 주거 및 취락별 저장용량을 복원하기로 한다.

1. 저장용량 복원의 기초

[그림 2]

완형 토기의 용량 분포
그림 2 완형 토기의 용량 분포
의 도표는 분석 대상인 771개 완형 토기의 용량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봉우리와 계곡이 나타나는바, 그에 따라 몇 개의 군(群)으로 나눈다. 그중 저장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토기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개별 ‘용량군’의 의미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근현대의 민속 및 생활자료와 비교하여 보자. (일꾼에게 고봉밥을 주었다고 하는) 놋그릇의 일반적인 용량이 약 0.9ℓ, 3~5인용 전기밥솥이 약 4~5ℓ인 점을 염두에 두면 1ℓ 내외를 개인용 식기, 5ℓ 내외를 취사 용기로 구분하여봄 직하다(김범철 외, 2007). 이와 더불어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에서 확인되는 취사흔을 통해 용량별로 토기를 분류한 시도(손준호·최인건, 2012)도 참조해볼 만하다. 그 연구에 따르면 최대 46ℓ가량의 대형 토기에서도 취사의 흔적이 확인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46ℓ까지 모두를 취사 용기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해당 필자들이 확인한 122점의 토기 중, 5ℓ 이하는 62점으로 절반가량이며, 10ℓ까지 확장하면 총 93점으로 2/3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한 점은 주로 취사가 이루어진 용량이 대체로 10ℓ 이하의 토기임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김범철, 2013). 그 이상의 용량을 지닌 토기에 대해서도, 대용량 취사가 가능하더라도 취사 외적인 영향―저장된 곡물이 화재로 소실된 상황 등―으로 인해 취사흔(炊事痕)과 유사한 흔적이 생성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金範哲, 2013). 본고에서도 개별 유적 토기에서 취사흔에 주목하면서 자비(煮沸)에 주로 사용되었을 토기를 판별해 보았으나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취사흔은 5ℓ 내외의 토기들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사실, 손준호 · 최인건(2012)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대형―20ℓ 이상―의 토기에서는 취사흔―특히 밥 짓기의 흔적―이 나타나는 예가 매우 적고, 있더라도 주로 수분이 많은 요리나 물 끓이기의 흔적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결과를 참조하자면, 대략 20ℓ나 그보다 약간 작은 토기의 목적을 저장으로 보아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다소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사례에서도 대략의 기준을 찾아보기로 하자. 물청소할 때 흔히 쓰는 손잡이 달린 버킷의 용량이 8~9ℓ인데, 가정에서는 유사한 용기가 임시로 쌀을 담아두는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장기적인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용기로는 작은 느낌이 든다. 이 용량은 작은 혹은 반(半) 말(斗) 정도이다. 흔히 전통적으로 큰말, 곧 10되(升)는 약 18ℓ이다. 말은 전통적인 용량 단위 체계상 섬(石) 다음가는 단계로 가내 저장에서 의미 있는 단위일 것으로 추정된다(김범철, 2014).

이상의 점들에 착안하여 중서부지역 출토 원삼국시대 (완형) 토기의 용량 분포를 관찰하면, 대략 14.5ℓ 또는 18.5ℓ를 경계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그림 2 참조]. 그런데 실물 토기를 보면 양자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도표상에서는 다른 군이지만, 기능적으로 양자를 한 묶음으로 처리해도 무방할 듯하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14.5 ℓ 이상의 용량을 갖는 토기를 ‘저장 용기(貯藏用器)’로 정하고 분석을 진행한다3). 그런 토기는 Ⅵ~Ⅸ의 군에 속하는데, 언뜻 보기에도 유적 간 차이가 적잖이 나는 점을 알 수 있다[표 3 참조]

표 3 유적ㆍ용량별 토기 수량과 비율

유적 Ⅵ~Ⅸ
~1.75 ℓ ~3.75 ℓ ~7.25 ℓ ~10.5 ℓ ~14.5 ℓ 14.5 ℓ~
발안리 24 (34.3%) 11 (15.7%) 13 (18.6%) 6 (8.6%) 10 (14.3%) 6 (8.6%) 70 (100.0%)
곤지암 32 (31.1%) 22 (21.4%) 16 (15.5%) 10 (9.7%) 12 (11.7%) 11 (10.7%) 103 (100.0%)
중도동 49 (19.0%) 74 (28.7%) 70 (27.1%) 27 (10.5%) 17 (6.6%) 21 (8.1%) 258 (100.0%)
율문리 83 (51.2%) 41 (25.3%) 15 (9.3%) 6 (3.7%) 6 (3.7%) 11 (6.8%) 162 (100.0%)
둔내 5 (16.1%) 4 (12.9%) 3 (9.7%) 2 (6.5%) 3 (9.7%) 14 (45.2%) 31 (100.0%)
천동리 16 (36.4%) 10 (22.7%) 10 (22.7%) 1 (2.3%) 4 (9.1%) 3 (6.8%) 44 (100.0%)
수양개 34 (33.0%) 12 (11.7%) 17 (16.5%) 7 (6.8%) 9 (8.7%) 24 (23.3%) 103 (100.0%)
243 (31.5%) 174 (22.6%) 144 (18.7%) 59 (7.7%) 61 (7.9%) 90 (11.7%) 771 (100.0%)
.

물론, 유적별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유적 혹은 주거지에서 출토된 모든 토기의 용량을 복원하여 판단해야 한다. 곧, 완형만이 아니라, 개체를 달리하는 파편으로부터도 용량을 추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적이 폐기되는 과정에서 대형 용기는 소형에 비해 파손이나 유실의 가능성이 더 크므로, 전체 토기 복원에서 해당 토기의 용량이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Shott, 1996). 이는 전체 저장양상 복원에 큰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다만 본고에서는 전체 토기에 대한 분석―편으로부터 원래 용기(parent vessel)를 복원하는 수학적 분석(김범철, 2013 ; 김범철 외, 2007)―을 수행하기에는 나름의 한계가 있어 완형 토기만을 대리 지표로 활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앞선 설명과 같이 전체 유적과 주거의 양상을 파악함에는 한계점이 있지만, 큰 범위에서 각 권역 및 유적의 경향성을 확인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3) 각주

3) 손준호ㆍ최인건(2012)의 관찰 결과를 종합해보면, 특정 토기가 복수의 목적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14.5 ℓ가 넘는 용량의 모든 토기가 저장만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두 시기의 비교를 위한 기준인 만큼 개별 토기의 용처를 일일이 구분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오류는 없을 듯하다.

2. 유적 간 저장양상 차이와 그 의미

앞서 살핀 대로 저장 용기의 수량은 유적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저장 용기의 비율은 10분의 1 정도이다[표 4 참조]

[표 4] 유적별 저장용기 비율 및 주거당 총저장량

유적 저장용기 비율 주거당 총저장량
발안리 8.6% (6/70) 8.47 ℓ
곤지암 10.7% (11/103) 3.24 ℓ
중도동 8.1% (21/258) 3.70 ℓ
율문리 6.8% (11/162) 1.42 ℓ
둔내 45.2% (14/31) 67.19 ℓ
천동리 6.8% (3/44) 6.46 ℓ
수양개 23.3% (24/103) 30.72 ℓ
11.7% (90/771) 5.62 ℓ
. 14.5 ℓ 이상의 대형용기가 소형에 비해 파손 및 유실의 가능성이 크므로 그 수나 비율이 낮은 점은 자연스럽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보더라도, 저장용 항아리가 배식ㆍ접대에 쓰이는 개인 용기보다 현저하게 수가 적은 현상에 크게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을 듯하다. 따라서 둔내와 수양개에서 타 유적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저장 용기 비율을 보이는 점이 이채로울 수밖에 없다.

다만, 유적의 규모, 곧 주거 수가 다른바, 공정한 비교에는 주거당 양상이 좀 더 객관적일 것이다. [표 4]에서 보듯, 저장 용기를 대상으로 한 주거당 저장량에서도 둔내와 수양개, 두 유적은 두드러진다. 이는 두 유적이 타 유적에 비해 저장에 대한 요구가 높았음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그럼, 다음에 올 질문은 “무엇이 요구의 강도를 차이 나게 했을까?” 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분석으로 거기에 개연적인 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실, 상당한 분석이 있더라도, 그런 질문에 압도적으로 설득력 있는 답을 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워낙 다양한 인문ㆍ자연적 요인들이 합쳐져 인간 행위의 변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개별 요인의 영향 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몇 가지 개연성 있는 환경 요인을 제시하기로 한다. 구체적으로 해발고도, 하천까지의 거리, 재배 적합 토양 비율 등의 지표에서 보이는 차이에 주목한다. 이들은 취락 주변에서 이루어졌을 작물 재배의 생산성 및 재배방식은 물론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김범철, 2022).

반면, 수양개의 재배 적합 토양(종합) 비율, 4.64%는 가장 낮은 수치이고, 그다음이 곤지암으로 17.01%를 나타낸다. 율문리와 발안리에 대해 피력하였던 논리를 적용하자면, 이 두 유적의 저장 지표는 매우 높아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양개는 그런 논리에 상당히 부합하지만, 곤지암은 그렇지 못하다. 곤지암의 저장 용기 비율은 10.7%로 제법 높은 편이지만 주거당 저장량은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차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고 새로운 쟁점을 제시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차이를 지적하는 외에, 더 진행하지는 않기로 한다.

4) 민족지 연구에 따르면, 정착농경민의 활동 강도는 거주지로부터 1㎞를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Chisholm, 1968). 이를 개발ㆍ관리ㆍ활용했을 수원(水源)과의 거리로 치환(김범철, 20062011)하면, 1㎞를 넘지 않는다는 것은 하천 이용에 있어 지리적 제약이나 부담이 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상 유적들은 그 절반인 500m 이내에 위치하는바, 모두 하천 접근성이 양호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도동, 둔내, 천동리는 30% 내외의 유사한 재배 적합 토양(종합) 비율을 보인다. 중도동과 천동리의 경우, 저장 용기 비율은 각각 6.1%와 6.8%로 매우 흡사하지만, 주거당 저장량은 3.70ℓ와 6.46ℓ로 어느 정도 다르다. 그러나 양자의 차이는 그리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반면, 둔내의 양상은 매우 다르다. 저장 용기 비율은 45.2%, 주거당 저장량은 67.19ℓ로 본고의 대상 유적 중 최고이다. 이는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다음인 수양개에 적용될 수 있는 논리와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수양개에 작동했던 환경적 제약요인이 재배 적합 토양(종합)의 비율이라면 둔내의 경우, 해발고도가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논리를 만들어 갈 수는 있겠다. 둔내의 해발고도 487.85m 는 여타 유적에 비해 몇 배의 차이를 보인다. 아마도 다른 유적들에 비해 열악한 기후 환경에 놓여 있었을 수도 있고(고성철 外, 2009), 작물의 생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비슷한 재배 적합 토양(종합)을 가진 유적들에 비해 높은 저장 압박이 있었을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기온과 강수량 또한 앞선 재배 적합 토양과 연계하여 고려해 볼 만하다. [표 6]

[표 6] 유적별 기온과 강수량(2014년~2024년)

유적명 연평균 기온(℃) 평균최고 기온(℃) 최고기온 (℃) 평균최저 기온(℃) 최저기온 (℃) 평균 일교차(℃) 총강수량 (mm)
발안리 13.11 18.42 36.24 8.58 -13.80 9.84 1,045.6
곤지암 12.11 18.11 35.10 7.03 -15.53 11.08 1,256.6
중도동 11.82 18.42 37.01 6.26 -18.18 12.16 1,188.1
율문리 11.82 18.42 37.01 6.26 -18.18 12.16 1,188.1
둔내 10.55 17.61 35.71 4.40 -22.12 13.21 1,234.2
천동리 10.72 17.74 35.51 5.01 -19.57 12.73 1,137.9
수양개 12.35 18.68 36.89 7.20 -15.90 11.48 1,099.6
은 각 유적에서 가장 가까운 지상관측소 자료를 기준으로 10년―2014년~2024년―의 기후 양상을 요약하고 있다.

발안리는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을, 가장 낮은 평균 일교차를 보인다. 재배 적합 토양에서도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어, 다른 유적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기인한 저장 압박이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곤지암과 수양개는 기온과 재배 적합 토양에서 유사한 양상을 띠지만 강수량에서는 적잖은 차이가 보인다. 곤지암은 수양개는 물론, 다른 어떤 유적보다도 강수량에서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작물이 주요 식료이자 저장물이었다면) 곤지암이 용수를 구하기가 수양개보다 유리했던바, 더 양호한 재배 환경에서 놓여 있었고 열악한 환경이 추동한 저장 압박은 낮았다고 추정된다. 중도동과 율문리는 서로 인접한바, 기후 환경도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중도동보다 율문리에서 재배 적합 토양의 비율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특히 율문리의 재배 적합 토양 비율은 앞선 발안리와 비견될 정도로 높다. 그러나 두 유적의 저장량 수치는 비교적 낮은 편으로, 서로 비슷하다. 율문리는 작물의 생산 및 습득에 있어서 타 유적보다 유리한 환경이었기에 저장에 대한 압박이 낮았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도동은 재배를 통한 식량 생산 및 습득의 수치는 낮아 같은 논리로는 설명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수변에 자리했던바,) 다른 식량 조달 방안이 있었기에 율문리와 유사한 저장 압박 아래 놓였던 것이 아니었나 추정해 볼 수는 있겠다.

둔내와 천동리는 작물의 생육에 좋지 않은 기후 환경—가장 큰 일교차와 가장 낮은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더구나 둔내는 해발고도가 높아 그 효과가 더 크게 발현되었다고 추정된다. 결국, 비교적 토양 환경이 양호함에도 기후조건이 적합하지 않아 저장 압박이 컸었다고 판단된다.

이상에서 살핀, 자연조건 외에도 인문적 요인에 의하여 고고 자료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필자들이 주목하는 바는 화재로 인한 주거 소실이다. 원삼국시대 주거지 중에는 화재로 인해 폐기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특히 대형 토기의 잔존이 특징적인 수양개 유적에서는 그런 양상이 더욱 확연하다. 따라서 화재로 인한 폐기 여부와 토기 양상, 특히 저장용량의 관계가 중요한 관심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화재로 인해 대피할 경우, 저장용이었을 대형 토기를 소지하기는 어려울 것인바, 남아 있는 토기의 비율과 용량 편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반드시 그러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표 7]

[표 7] 유적별 주거 폐기양상과 완형 토기 평균 용량

유적명 주거지 (화재) 주거지 (일반) 완형 토기 평균 용량 (화재) 완형 토기 평균 용량 (일반)
발안리 2 (12.5%) 14 (87.5%) 35.58 6.74
곤지암 16 (44.4%) 20 (55.6%) 7.02 6.76
중도동 35 (41.2%) 50 (58.8%) 6.97 5.66
율문리 24 (36.9%) 41 (63.1%) 3.24 4.03
둔내 3 (50%) 3 (50%) 20.22 13.14
천동리 2 (25%) 6 (75%) 2.07 5.45
수양개 19 (100%) 0 (0%) 9.26 0.00
101 (43%) 134 (57%) 12.05 5.97
은 각 유적의 주거지를 화재 흔적 여부에 따라 구분― ‘화재’ 대 ‘일반’ ―하고, 각각에서 출토된 완형 토기의 평균 용량을 비교한 것이다. 수양개의 경우, 전체 유적이 화재 주거지로 확인되어 일반 주거지와의 비교가 어렵다. 그러나 다른 유적에서는 화재 여부에 따른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화재 주거지’에서 출토된 완형 토기의 평균 용량이 대체로 크다. 다만, 율문리와 천동리에서는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화재 주거지의 토기가 용량이 더 작은 경우도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발안리와 둔내를 제외하면, 그 차이도 미미하다. 결국, 화재로 인한 폐기가 대형 토기의 잔존이나 저장용량의 증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V. 맺음말

이상에서 원삼국시대에 비정되는 중부지역 7개 주거유적에서 출토된 완형 토기를 재료로 저장에 활용되었을 토기를 선별하고, 용량을 추출하여 유적별 저장역량을 복원·비교하였다. 7개 유적 간에는 적잖은 차이가 보인다. 그런 차이는 자연 및 사회 등의 다양한 요인으로 유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둔내와 수양개 등 유적에서 보듯, 열악한 생계환경이 저장의 압박 요인을 생성하고 이것이 토기 조합에 반영되었다는 가능성과 수양개에서 두드러지는 화재와 같이 인위적 행위에 따라 대용량 토기 출토 비율의 변동 가능성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세밀한 사회 복원을 위해 향후 좀 더 포괄적인 시도를 기대한다.

[표 5] 유적별 해발고도ㆍ하천 거리ㆍ재배 적합 토양

유적 해발고도 (m) 하천 거리 (m)4) 재배 적합 토양 비율(%) - 논 재배 적합 토양 비율(%) - 밭 재배 적합 토양 비율(%) - 과수 재배 적합 토양 비율(%) - 종합
발안리 12.57 187.69 30.31 44.19 5.55 60.23
곤지암 79.12 181.47 1.77 12.80 0.00 17.01
중도동 73.80 274.41 0.59 28.01 0.00 29.41
율문리 81.34 442.43 16.83 53.78 0.00 63.68
둔내 487.85 88.39 5.17 19.45 3.46 31.92
천동리 276.30 72.96 4.54 20.55 0.32 25.29
수양개 148.13 119.21 0.80 3.08 0.96 4.64
평균 165.59 195.22 8.57 25.98 1.47 33.17

참고문헌

  1. 강릉대학교 박물관 (1997). 『橫城 屯內 住居址』.
  2. 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12). 『平昌 泉洞里·馬池里 聚落』.
  3. 강원도문화재연구소 (2023). 「131. 춘천 율문리 256-38번지 유적」, 『2021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서ⅩⅩⅦ』.
  4.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橫城 屯內遺蹟』.
  5.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춘천 율문리 335-4번지 유적』.
  6. 강원문화재연구소 (2011). 『平昌 泉洞里 220번지 遺蹟』.
  7.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2007). 『華城 發安里 마을遺蹟』.
  8. 고성철·신영화·손동찬·김현종·황희숙 (2009). 「원주·횡성 지역의 식물상」, 『한국자원식물학회지』 22.
  9. 구자진 (2003). 「옥천 대천리의 신석기시대 집자리에 대한 연구」, 한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과 석사학위논문.
  10. 국강고고학연구소 (2020). 『횡성 둔내유적』.
  11. 국강고고학연구소 (2023). 『춘천 율문리유적Ⅱ』.
  12. 기남문화재연구원 (2023). 『廣州 昆池岩里Ⅲ 遺蹟』.
  13. 김범철 (2006). 「중서부지역 靑銅器時代 水稻 生産의 政治經濟: 錦江 중·하류역 松菊里型 聚落體系의 위계성과 稻作集約化」, 『한국고고학보』 58.
  14. 김범철 (2011). 『쌀의 고고학』, 민속원.
  15. 김범철 (2013). 「靑銅器時代 土器 容量復原 試論; 湖西地域 취락출토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보』 80.
  16. 김범철 (2014). 「湖西地域 靑銅器時代 家內 貯藏樣相 變化의 意味」, 『한국상고사학보』 83.
  17. 김범철 (2016). 「‘松菊里式 土器’의 形態的 變異 探索: 湖西地域 完形出土品을 기초로」, 『역사와 담론』 77.
  18. 김범철 (2022). 「청동기시대 취락변천상에 대한 다차원적 접근: 세종특별자치시 유적을 중심으로」, 『호서고고학』 51.
  19. 김범철·안형기·송한경 (2007). 「무문토기의 용량분석 시론: 충남지역 청동기시대 취락 출토품을 중심으로」, 『야외고고학』 2.
  20. 김영준 (2003). 「우리나라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시대 민토기 연구: 그릇형태와 크기를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1. 손준호·庄田愼矢 (2004). 「松國里型甕棺의 燒成 및 使用方法 硏究」, 『호서고고학』 11.
  22. 손준호·최인건 (2012). 「무문토기 취사흔의 관찰과 해석」, 『고고광장』 11.
  23. 예맥문화재연구원 (2016). 『春川 栗文里遺蹟Ⅱ』.
  24. 예맥문화재연구원 (2021). 『春川 栗文里遺蹟Ⅲ』.
  25. 조현종 (1989). 「松國里型土器에 대한 一考察」,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6. 춘천 중도동유적 연합발굴조사단 (2020). 『春川 中島洞遺蹟』.
  27. 충북대학교 박물관 (2001). 『丹陽 垂楊介遺蹟: 5~7次 調査報告』.
  28. 한국고고학회 (2010). 『한국 고고학 강의(개정 신판)』, 사회평론.
  29. 한국문화재재단 (2016). 「춘천 율문리 75-4번지 유적」, 『2014년도 소규모 발굴조사 보고서 Ⅵ: 강원 2』.
  30. 호남문화재연구원 (2021). 『춘천 율문리 84-1번지 유적』.
  31. Chishlom, Michael (1968). Rural Settlement and Land Use: an Essay in Location, Hutchinson University Library, London.
  32. Rice, Prudence M. (1987). Pottery Analysis: A Sourcebook,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33. Senior, Louise M., and Dunbar P. III Birnie (1995). Accurately Estimating Vessel Volume from Profile Illustrations, American Antiquity, 60(2), 319-334.
  34. Shott, Michael J. (1996). Mortal Pots: On Use Life and Vessel Size in the Formation of Ceramic Assemblages, American Antiquity, 61(3), 463-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