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백제의 지배구조와 왕위계승 갈등의 반복 배경

백길남

한성백제박물관

발행: 2025년 1월 · 34권 · pp. 61-85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2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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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 백제 국왕은 扶餘氏 肖古系가 왕위를 잇는다는 점은 확고해졌으나 扶餘氏 肖古系 중 특정 가계가 왕위를 독점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적장자’계승 원칙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력한 왕제인‘적임자’가 왕위를 잇는 변칙이 허용되었다. 왕제 등 근친 왕족이 가진 정치적 위상, 경제적 특권, 私的 군사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眞氏와 解氏는 군사적 기반을 바탕으로 부여씨 왕실과 꾸준히 통혼하며 주요 직임을 맡았고, 특히 兵官佐平으로 상징되는 군사권을 독점했다. 이들은 차기 왕위계승자를 지지하며 왕실과의 인척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했으며, 왕실과 통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주요 직임에서 배제되는 정치적 한계가 있었다.
上佐平, 內臣佐平, 병관좌평과 같은 핵심 직임은 왕족과 외척 세력이 관례적으로‘분담’하였다. 이는 곧 국왕의 자율적인 인사권과 군사권 행사의‘제약’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왕권이 친족집단의 이해관계에서‘초월’할 수 없었음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배구조가 고수된 것은 방계 왕족의 왕위 도전을 제어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가까운 친족집단을 왕실의 울타리로 삼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여씨, 진씨, 해씨의 공동 이익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였다. 沙氏, 木氏 등 새로운 유력 성씨 집단과 中國系 유력 인사들이 성장하는 가운데,‘백제 최대 귀족 세력’인 부여씨는 왕위계승과 국정 운영의 안정을 위해 진씨, 해씨와 선택적으로 연합하며 통혼했으며 진씨, 해씨 또한 왕실과 인척 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친족집단마다 가진 이해관계와 핵심 권력을‘분담’하는 관례에 따라 부여씨 특정 가계가 왕위를‘독점’할 수 없는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위계승 갈등이‘반복’되기는 했지만, 부여씨, 진씨, 해씨 세력은 주요 직임과 핵심 권한을 독점하는 지배구조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다.
키워드: 왕족외척부여씨진씨해씨왕위계승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