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북원소경의 설치와 범위 및 치소에 대한 고찰

전덕재

단국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63-98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63

초록

3세기 중·후반 고이왕대에 강원특별자치도 영서지역이 백제의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 사이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영서지역에 진출하면서 양자 간 충돌이 나타났다.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원주지역의 정치세력을 통제하였는데, 법천리유적의 고분과 출토품을 통해 이를 입증할 수 있다. 396년에 고구려가 남진하여 백제로부터 58성 700촌을 빼앗았는데, 58성의 하나로서 오늘날 원주시로 비정되는 古牟婁城은 후일 平原城으로 개칭된 것으로 추정된다. 551년 신라가 한강 상류 10郡을 확보하면서 원주 역시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신라는 여기에 平原郡을 설치하였다. 통일 이후 신라는 새로 편입된 옛 고구려지역 및 강원특별자치도 영서와 영동지역의 여러 군·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石門戰鬪 이후 죽령로를 통한 당군의 침략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678년에 평원군에 북원소경을 설치하였다. 685년 9州 완비와 더불어 북원소경의 안전이 더욱 공고하게 다져졌으며, 당과의 긴장도 점차 완화됨에 따라 북원소경은 다른 소경과 마찬가지로 전국 통제력 강화를 위한 陪都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북원소경의 치소는 원주 시내 일원에 위치하였고, 신문왕 5년에는 오늘날 금대성으로 비정되는 북원경성을 축조하였다. 북원소경의 관할 범위는 오늘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일원과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및 북내면의 일부를 망라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북원소경을 북원경으로 개칭하였고, 9세기 후반에 北原京을 北原府로, 후고구려에서 이를 다시 原州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