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나말여초 西原京의 변화와 지방사회의 동향
충북대학교
발행: 2025년 1월 · 35권 · pp. 129-154
DOI: https://doi.org/10.71244/jojm.2025.35.129
초록
본 논문은 나말여초 시기 서원경의 변화와 지방사회의 동향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삼국 통일 전쟁 이후 청주 지역에 설치된 서원경은 신라 말에 西原府로 개편되었다. 이는 당의 留守府制를 참고한 것으로 이해된다. 소경은 본래 주에 영속되었으나, 부로 개편됨으로써 그 위상이 승격되어 주에서 독립된 행정단위가 되었으며, 그 관할 범위도 확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개편이 이루어졌던 계기로 822년 김헌창의 난을 주목하였다. 김헌창의 난 이후 신라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약화되었다. 때문에 신라 중앙은 소경을 부로 개편함으로써 지방을 안정시키고, 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울러 지방세력과 어느 정도 타협도 해야 했을 것이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방세력이 자립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신라말 잇따른 자연재해와 국가의 지방 지배력 약화는 신라 국가의 붕괴를 초래하였고, 각 지역에서 군사조직을 갖추고 자립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청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신라의 골품제가 무의미해지면서 서원경/서원부는 신라 골품제 하의 지배층이 모여 사는 副都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궁예가 청주 지역을 차지하면서 ‘靑州’로 개편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대읍으로서의 면모는 유지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청주 지역에는 많은 土姓이 존재하였으며, 고려 초에 재지세력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官班을 지녔다.
청주의 많은 호족세력은 궁예가 청주 인호를 철원으로 사민하면서 재경세력과 재지세력으로 분리되었다. 재지세력과 재경세력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앙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고 서로 견제・대립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왕건은 즉위 이후 잇달아 일어났던 반란 혹은 반란 모의를 진압하고, 청주에 직접 행차함으로써 청주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왕건을 지지하는 청주의 재경세력 중 청주 김씨는 정치적 지위와 왕실과의 혼인 등 중앙에서의 세력을 바탕으로 지방사회에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청주 지역의 재지세력은 청주 김씨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지방사회에서 청주 김씨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청주 지역은 고려의 지배체제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신라말 잇따른 자연재해와 국가의 지방 지배력 약화는 신라 국가의 붕괴를 초래하였고, 각 지역에서 군사조직을 갖추고 자립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청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신라의 골품제가 무의미해지면서 서원경/서원부는 신라 골품제 하의 지배층이 모여 사는 副都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궁예가 청주 지역을 차지하면서 ‘靑州’로 개편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대읍으로서의 면모는 유지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청주 지역에는 많은 土姓이 존재하였으며, 고려 초에 재지세력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官班을 지녔다.
청주의 많은 호족세력은 궁예가 청주 인호를 철원으로 사민하면서 재경세력과 재지세력으로 분리되었다. 재지세력과 재경세력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앙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고 서로 견제・대립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왕건은 즉위 이후 잇달아 일어났던 반란 혹은 반란 모의를 진압하고, 청주에 직접 행차함으로써 청주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왕건을 지지하는 청주의 재경세력 중 청주 김씨는 정치적 지위와 왕실과의 혼인 등 중앙에서의 세력을 바탕으로 지방사회에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청주 지역의 재지세력은 청주 김씨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지방사회에서 청주 김씨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청주 지역은 고려의 지배체제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